1990년대 초반을 주름잡았던 코미디크루(개그팀). 1991년 KBS 1회 대학개그제 출신 멤버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멤버는 위 사진과 같이 김국진, 김용만, 박수홍, 김수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시 KBS 코미디의 대세는 봉숭아 학당으로 대표되는 캐릭터 콩트나 심형래 류의 슬랩스틱 코미디가 대세였고, MBC에서는 주병진과 이경규를 앞세운 토크쇼 형식의 신세대 예능이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이에 당시 KBS 코미디언 중 우리도 토크 코미디를 해보자는 생각을 가진 대표적인 인물이 감자골 네 사람이었고, 마침 당시 김웅래 KBS PD가 기존 대학개그제 콤비가 아닌 새롭게 잘 맞는다고 생각되는 코미디언들을 묶기 시작했는데, 이 네 사람이 묶이게 되었다.
그리고 SBS의 개국으로 선배 코미디언들이 대거 SBS로 이적하고 KBS 코미디언들이 세대교체를 이루는 시점이어서 쇼 비디오 쟈키의 뒤를 이은 한바탕 웃음으로라는 새로운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주축을 이루며 KBS의 여러 프로그램에서 MC를 맡는 등 승승장구했으며, 넷이서 같이 CF를 찍는 등 당시 최고의 코미디팀으로 인정받았다.
팀의 이름인 감자골은 넷이서 팀을 이룰 당시 박수홍이 김국진에게 "형, 우리 팀 이름은 뭘로 할까요?"라는 물음에 마침 감자를 먹고 있던 김국진이 "그냥 이걸로 하자"고 해서 감자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넷 다 크리스천이고, 또한 이제는 어엿한 유부남들이다.
리즈 시절이 빨리 찾아온 만큼 이들에게 시련도 엄청 빨리 닥치게 되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당시 연예계 상황을 설명을 하자면, 요즘이야 방송사 공채 연예인도 전속 기간 어느 정도 채우면 기획사와 맘껏 계약을 할 수 있으나, 이 때만 해도 방송사 공채는 방송사만의 전유물이었고, 이적도 쉽지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방송사에서는 싼 값에 기용 할 수 있는 공채들을 이 프로그램 저 프로그램 출연시키면서 많이 부려먹었다.
이 상황에서 선배들의 대규모 이적으로 감자골 멤버들도 기회를 받아 많은 프로그램들에 출연하고 있었는데, 이들도 마구잡이로 출연하면서 몸을 혹사시키게 되었고, 특히나 인기를 끌고 있었으니 여기저기서 많이 출연하였다. 혹사가 심하자 팀의 맏형이었던 김국진은 PD들에게 사정을 했지만, 당시 막강한 권한을 가졌던 PD들에겐 씨알이 먹히지 않았다.
결국 김용만은 몸져 눕게 되었고, 이에 열받은 멤버들이 김국진의 주도 하에 1993년 1월, 출연 프로그램에서 모두 하차하게 되었다. 이때가 데뷔한지 불과 2년차였다.
그러나, 선배들이 이들에게 프로답지 못하다고 비난하였다.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감자골을 옹호해준 사람들이 임하룡과 이경규 두 명 뿐이었다고 한다. 이미 1992년 말에 코미디 자유출연을 선언하고 KBS와 MBC에 동시 출연 중이던 임하룡은 특히 "얘네들이 어린 아이들도 아니고 군대 갔다 온 성인이니,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방송사 측에 항변한 것일텐데 왜 우리 동료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주지 못할 망정 싹도 안 자란 아이들을 영구제명시키냐?"라면서 그들을 옹호해 주었다. 이경규는 모두가 외면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들을 방송에 맘껏 출연할 수 있게 받아준 당대 유일한 진행자였다. 그리고 끝내 이들은 미국으로 도피성 유학을 결정하고, 이경규의 배려로 후술된 대로 마지막 인사를 일밤에서 하고 떠날 수 있었다.
결국 견제와 피로 누적으로 지친 이들은 같은 해인 1993년 2월, 감자골은 당시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출연하여 고별인사를 하고 미국으로 가기로 했는데, 녹화가 시작되기 직전 "프로그램을 열 개씩 하던 감자골이 갑자기 그만 둔 것은 MBC로 이적하기 위함이었다!"라면서 임하룡을 제외한 방송 3사 코미디언들 모두가 MBC로 쳐들어와서 녹화를 방해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이 난동을 피우는 통에 김국진은 스태프들을 따라서 개구멍으로 피신을 갔다고 한다. 참고로 이때 김국진을 숨겨준 사람이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이라고 라디오 스타에서 밝혔다. 1980년대 말 ~ 90년대 초에 활발하게 활동했던 코미디언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면 씁쓸해지는 대목. 감자골은 이경규가 선처를 호소하고 맏형 김국진이 나서서 "자신들이 다른 곳으로 이적하는 것이 아니라 코미디언으로서 은퇴하고 이민가는 것이다."라고 설득해서 겨우 시청자들에게 고별 방송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감자골은 방송 3사 코미디언 협회에서 제명당한다. 이들의 KBS 선배 개그맨 이봉원은 후일 방송에서 감자골 사태에 대한 질문을 받자, '당시 나는 SBS로 이적한 상태라 아무 관련이 없다'는 파렴치한 변명을 했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참 이상한 사건.
우여곡절 끝에 고별 방송을 하고 김국진과 김용만은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하지만 같이 가기로 했던 박수홍은 군대 영장이 날아와서 입대를 하게 되었다. 김수용은 비자 발급 당시 설문을 제대로 안 읽고 총기와 마약을 소지한 전력이 있다는 항목을 체크하는 바람에 비자가 안 내려와서 입국이 안 되었다고 한다. 다만 감자골 4인방이 라디오 스타에 나왔을 때 김수용 본인이 밝히기로는 서류상에 직업은 '코미디언'으로 적었지만 감자골 사태로 모든 방송에서 하차는 했기에 현재 출연 중인 프로그램도 없고, 따라서 수입도 없기에 미국 대사관 관계자가 미국에 가서 불법 체류로 눌러앉을 가능성이 많다고 자체 판단하여 거부했다고 이야기 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3사 코미디언 협회에 제명을 당하고 한동안 방송계를 떠나 있었다. 이렇게 이들은 소리소문 없이 묻히나 했지만...
미국으로 유학을 간 김국진과 김용만은 이것 저것 해 보다가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었을 때인 1994년에 귀국하여 2000년대 초반까지 MBC에서 활동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으며, 군복무를 마친 박수홍은 전역 후 SBS와 MBC에서 활동하며 비록 앞의 둘 만큼은 아니었지만 역시 전성기를 보냈다.
반면 비자 문제로 미국행이 좌절되고 이미 군대도 갔다 온 상황이었던 김수용은 선배들의 핍박을 감수하면서 다시 KBS 코미디로 복귀했다. 단역 위주로 활동하다가 어느 정도 상황이 나아지자 MBC로 이적하면서 나름대로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
이 사건 이후 KBS 희극인실에서는 공채 개그맨의 방송사 전속 기간을 2년으로 정하고, 데뷔 만 2년 후에는 연예기획사와의 자유로운 계약과 각 방송사 자유 출연을 허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