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은행 역사상 두 번째로 큰 규모의 파산사태 '실리콘밸리 은행 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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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은행 역사상 두 번째로 큰 규모의 파산사태 '실리콘밸리 은행 파산'



2023년 3월 10일에 실리콘밸리 은행이 파산한 사건이다.

우선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SVB가 스타트업들의 은행으로 불리는 매우 특수한 구조라는 점에 착안할 필요가 있다.

스타트업들은 기본적으로 투자자의 돈을 받으며 설립 시 3차, 4차 펀딩까지도 간다. 그리고 미국 자본시장의 투자력은 어마무시하다. 즉 이들 스타트업은 현금을 많이 들고 있었고, 스타트업이 주요 고객인 SVB에는 그 현금들이 그대로 쌓였다. 그런데 스타트업 기업은 일반 기업들과 큰 차이점이 있으니, 바로 빚을 내서 인프라에 투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애초에 어지간하게 큰 대기업이 아닌 경우에는 펀딩에 성공했다면 당분간 은행에 별도로 빚을 낼 일도 없다. 설령 빚을 내어 투자를 했더라도 스타트업의 특성상 캐시카우를 처음부터 확실히 쥐고 있는 경우가 드물다. 즉 이들 스타트업은 안정 궤도에 오르기까지 실제 벌어들이는 이익이 크지 않다는 점도 특징이다.

이런 특성들은 SVB의 입장, 즉 은행 입장에서는 악영향이다. 은행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야 하는데, 전통적인 기업은 이것이 가능하다. 은행에서 빚을 내어 과감하게 선행 투자를 하고, 그로 인해 기업의 이익이 증대되면 이게 곧 은행의 이자 수익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다. 그러나 SVB의 주요 고객 포트폴리오는 죄다 현금 부자인 스타트업이니 역설적으로 스타트업들의 수익률이 오를수록 SVB에는 현금만 쌓여가는데 이 현금을 빌려줄 곳이 없었다.

사실 여기서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성공하여 다른 산업에도 돈을 빌려주었다면 얘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SVB의 전문가들도 바보는 아니었기 때문에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시도했다. 쌓여있는 현금을 어떻게든 굴려야 은행의 이익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SVB가 가장 많이 투자한 분야 중 하나가 미국 국채, 그것도 장기채였다. 저금리가 계속 이어진다는 가정 하에서는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을 수도 있다. 초우량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미국 국채를 다량 보유하고 있으면 수입이 크지 않지만 안정적으로 계속해서 수익을 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후술하듯이 은행이 자산의 큰 비중을 장기채로 가져가는 것은 드물다 못해 거의 없는 일이며 많은 기사에서 이것을 경영 파탄의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러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과 그로 인한 금리 인상이 SVB에게는 악몽으로 다가오고 말았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미국 국채 금리도 같이 인상된다. 채권자들에게는 사실 파티 타임이다. 이자율이 오르면 그만큼 자신들의 이자 수익도 늘어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국채 가격의 하락 문제가 있지만 만기까지 보유할 것으로 분류하면 회계상 손실도 인식되지 않는다. 그러나 SVB와 같이 상술한 것처럼 이자율이 낮던 시절에 미국 국채 장기채를 너무 많이 사들인 상태면 비극이 된다. 이런 상태에서 이자율이 오르니까 이들 장기채는 문자 그대로 똥값이 되고 말았다. 이러면 단기채는 그때그때 높은 수익이 나지만 장기채는 낮은 이율 그대로이므로 수익이 좋지 못하게 된다. 10년 후에 2% 주는 채권이 있고(장기채), 1년 후에 5% 주는 채권(단기채)이 있을 때 그 중에 고르라면 투자자들은 당연히 후자를 고를 수밖에 없다. 즉 같은 미국 국채라도 현재와 같이 높은 금리 하에서 단기채는 인기가 있어 값이 하락해도 그 폭이 상대적으로 작지만 장기채는 사려는 사람이 없으므로 그 폭이 훨씬 더 크다.

그리고 이 폭락사태는 그대로 SVB가 보유한 자산 가치 하락으로 이어졌다. 은행의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절반 이상이 장기채인 상황에서 장기채 가격이 바닥에 떨어지고 만 것이다. 그런데 위에 써놓았듯 SVB는 전통적인 대출이자 수입이 현저히 적은 은행이다. 이러다보니 현금은 죄다 장기채에 묶여 있고, 그 장기채는 가치가 하락했으며, 다른 수익 나올 구멍도 없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는 SVB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정확히는 코로나 사태로 스타트업의 유동성이 좋아졌었다. 코로나로 인한 특수 상황에서 여러 스타트업들이 돈을 많이 벌었고 그 현금은 전부 SVB에 쌓였다. 그러나 코로나가 서서히 종식되며 스타트업의 코로나 특수 경기는 저물기 시작했고 흘러넘치던 유동성도 점점 제자리로 돌아왔다. 즉 유동성 경색이 시작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위에서 언급한 미국 국채 금리의 상승이 다른 은행과 달리 역설적으로 SVB에는 더 큰 악재로 다가온 것이다.



2023년 3월 9일, 이자율 상승으로 인한 국채 매각으로 18억 달러에 달하는 손해를 입고 주가가 크게 하락했다. 뱅크런이 시작되어 주요 투자자들과 기업이 돈을 빼기 시작했고, 3월 10일 주가가 66%가 빠지면서 주식거래가 중지됐다.

SVB가 손실을 공개하고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하자마자 투자자들은 SVB의 주식을 팔아치우기 시작했고, 스타트업들도 유동성이 경색되고 안 좋은 소문이 돌자 쌓여있던 현금을 인출하기 시작했다. 슬랙과 같은 업무용 메신저와 폰뱅킹의 보급화로 뱅크런 속도가 미친듯이 가속화되어 단 하루만에 56조 원이 인출되었다.주가 폭락과 기술력 발전의 시너지 효과로 SVB는 뱅크런이 일어나 자산이 급감하고 결과적으로 SVB의 시가총액이 하루만에 60%가 날아가고야 만 것이었다.

결국 2023년 3월 10일 늦은 밤 캘리포니아 주정부에서 SVB의 은행업허가를 취소하고 파산관재인(receiver)으로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지정, 미국 은행 역사상 두 번째로 큰 규모의 파산사태가 터졌다.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예금자 보호 절차에 들어가 10일 SVB 전 지점을 폐쇄하고 2090억 달러(약 280조 원)에 달하는 자산을 압류했다. 실리콘밸리의 경제와 미국 경제 및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이 갈지 전 세계 언론이 관심을 두고 있다.



미국 정부는 실리콘밸리은행에 고객이 예치한 돈을 보험 대상 한도와 상관 없이 전액 보증하는 대책을 마련하였다. 재무부, 연방준비제도, 연방예금보험공사가 발표한 공동 성명에 따르면 모든 예금주는 현지 시각 13일부터 예금 전액에 접근할 수 있다.한편 예금에 대해서는 보장한다고 했지만 주식과 채권은 보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 국민연금도 돈을 물린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