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 1일부터 9월 3일까지 미승인국 이치케리야 체첸 공화국의 샤밀 바사예프(Шамиль Басаев, Shamil Basayev)가 지휘하던 과격파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러시아 북오세티야 공화국의 베슬란 1번 공립학교에서 발생한 테러이다.
이 사건의 주범인 샤밀 바사예프는 체첸 고유의 수피즘 계열 세력 출신(이슬람 극단주의의 토대가 된 극단적 계파인 와하브파에 경도된 파벌)으로, 체첸 민족보다도 지하드와 종교적 테러를 더 중시하는 성향이었다.또한 다게스탄 공화국을 건드려서 2차 체첸 사태를 유발한 자이기도 했다. 이미 1차 체첸 사태에서 얻을 만한 것은 다 챙겼음에도, 정말로 쓸데없는 침략을 개시하여 체첸의 몰락에 크게 일조한 것이다.
2차 체첸 전쟁 당시 바사예프에 대한 반응은 체첸 내부에서도 극도로 부정적이었으며, 바사예프의 부하들이 시민들에게 엄청난 전쟁범죄 행위인 폭력과 강간을 비롯한 악행을 수시로 벌여 체첸인들도 엄청나게 분노했다.
문제는 체첸 반군의 수장이었던 아슬란 마스하도프의 통제력은 매우 약했다는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베슬란 인질극 소식을 접하자 러시아와 협상해서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고 직접 테러리스트들을 설득하려고 했으나 학교 건물이 폭파되는 바람에 설득이 무위로 돌아갔다고 한다. 아슬란 마스하도프는 2005년에 사살되었고, 베슬란 학교 인질사건의 주모자인 샤밀 바사예프 역시 2006년 러시아의 공작으로 운송 중이던 폭발물이 터져 폭사했다.
사건 발생일인 9월 1일은 개학일로, 수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들, 교사들이 학교에 모여 있었다(베슬란 학교는 초, 중, 고 통합 학교다). 당일 오전 9시 15분 무렵에 32여 명의 테러리스트들이 갑자기 난입하여 학교를 점거하자 1천여 명이란 엄청난 규모의 민간인이 인질로 잡히게 되었다.
이들 테러리스트들은 사전에 학교 치안을 담당하던 경찰관들을 3일 전에 살해하는 것을 시작으로 대항할 가능성이 있는 성인 남성들을 따로 분류해서 감시하였다. 이때 어린이들까지 인질로 잡은 것에 강력히 반발하며 아이들은 모두 풀어주고 어른들만 인질로 잡자고 하던 일부 여성 테러리스트들이 동료들과 격하게 다투었는데, 그들 중 한 명이 가지고 있던 자살용 폭약을 반대측 테러리스트가 기폭시켜서 그 폭발로 아동을 풀어주자고 주장하던 여성 테러리스트들 대부분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했고, 그나마 중상을 입은 몇 명의 생존자들도 배신자라며 살해당했다. 또한 이 화풀이로 성인 인질 몇 명을 데려다가 폭탄으로 폭사시키는 진짜로 미친짓도 했다.
인질들을 모아둔 체육관에는 대량의 폭약을 설치하였다. 기폭 장치는 범인들 중 한 명이 그 위에 서 있다가 모종의 이유로 내려서게 되면 폭발하는 장치였다. 사실상 죽음을 각오한 데드맨 스위치인데 이 범인들의 상당수가 체첸 사태 와중에 남편을 잃은 과부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 테러리스트의 비율이 높은 것도 특징이었다.
테러리스트들은 AK 소총과 수류탄 이외에도 PKM 기관총과 유탄발사기, RPG-7 같은 중화기까지 다수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러시아군 저격수의 조준 사격을 막으려는 의도로 인질과 아주 밀착해서 행동하였으며, 이전에 모스크바 극장 인질극에서 사용된 수면 가스를 염두에 두어 건물 내의 창문을 최대한 깨부수고 위치 추적이나 외부 통신을 막기 위해 인질들의 휴대폰을 전부 빼앗아 부수는 등 치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처음에 테러범들을 제압하려고 출동한 지역 경찰들은 진압을 시도했으나 오히려 총격전에서 화력으로 압도당하여 역으로 패하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인질들에게 매점 음식을 제공하는 등 꽤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협상 과정에서 다수의 인질을 석방한 모스크바 극장 인질극의 테러리스트들과 달리 극도의 잔인성을 보여 남성 인질을 몇 명 골라내어 본보기를 보여주겠다는 이유로 죽여 창문 밖에 집어던지는가 하면, 인질들에게 오세트어를 쓰면 죽이겠다고 위협하며 러시아어만을 쓰게 하고는 이를 오세트어로 통역해준 사람을 오세트어를 썼다고 그 자리에서 쏴 죽이는 행각을 저질렀다.
사건 당시는 9월이었는데 아직 상당히 더운 날씨였고, 학교 내부는 공간 자체도 좁은 데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있어 체온 등으로 인해 창문을 모두 깼음에도 상당히 더웠다. 테러리스트들은 외부에 수시로 물과 식량 등을 요구해서 받아냈으나, 테러범들은 자기들 배만 채울 줄 알고 인질들에게는 거의 제공하지 않았다. 때문에 더위를 참지 못한 상당수의 인질들이 남녀 가리지 않고 옷을 벗어서 기록 사진 등에서 속옷만 입고 있는 희생된 인질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했다.
지역 경찰의 진압이 실패한 것을 계기로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된 러시아 정부는 군대와 경찰, 특수부대를 동원해서 테러범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학교를 포위했다. 그 다음엔 협상팀을 보내 아이들을 풀어주는 대신 인근에서 자원한 성인 남성들로 인질을 교환하는 척하며 속여서 진압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9월 3일 러시아 비상대책부소속 의료팀 4명이 두 대의 구급차를 이용해 학교 건물 바깥의 시신 20구를 인계하고 사망한 테러범의 시신을 학교 안으로 전달하는 내용이 합의되었고 구급차가 도착했다. 테러범들도 여성과 어린이 31명을 우선적으로 풀어줬다.
그러나 당일 오후에 갑작스럽게 학교 건물에서 원인 불명의 큰 폭발이 발생하였으며, 이에 놀란 테러리스트들은 건물 밖으로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 때 구급차에 타고 있던 구조대원 2명이 차량을 관통한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러시아군과 러시아 국가경찰, 내무군은 폭발과 의료진의 사망으로 협상이 실패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즉각 전투에 들어가게 된다. 이 때부터 벌어진 전투에는 인질극에 분노하여 집결한 5천여명의 민병대들과 무장 시민들도 참여했다.
민간인 314명, 테러범 31명, 군인 10명, 구조대원 6명, 민간군사기업 직원 3명 등 총 364명 사망, 753명이 부상 당했다.
인질의 규모나 사태 결과로 보았을 때, 전세계 역사상 최악의 인질극으로 손꼽히는 사건이다. 다른 테러 사건에서는 최소한 어린이들은 풀어주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는데, 이 사건은 범인들이 처음부터 미성년자들이 절대 다수인 학교를 무력 점거해서 어린이들을 인질로 잡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저질러 놓고 보니 너무 심했다 싶었는지 개중에서도 아이들과 여자들만이라도 풀어주고 남자들만 인질로 잡자고 강력하게 주장하던 자들이 있긴 했는데, 다수의 테러범이 이들을 배신자라고 모독하고 인질들 앞에서 죽였다. 이것만 봐도 체첸의 독립을 핑계로 어린이들마저 거리낌없이 죽이면서 자기들 대리만족이나 이루고자 한 최악의 미치광이 무리임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애초에 출신 성분만 봐도 체첸 독립운동을 했던 자들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외부에서 들어온, 혹은 그들에게 포섭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중심이었다. 즉, 애초에 체첸 독립 운운한 것 자체가 본인들의 미치광이 짓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당장 주동자부터가 그 이슬람 극단주의자 중에서조차 과격파 종자로 분류되는 사밀 바사예프였고, 당시 도주 중이었던 체첸 독립 운동 지휘자이자 임시정부 수반이었던 아슬란 마스하도프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마스하도프는 이런 악질적인 테러, 인질극 행위로 독립을 쟁취하기보다는 정식 정부와 정규군들을 상대로 한 전투나 협상으로 독립을 쟁취하려고 애쓴 온건파였다.
이 사건으로 러시아 전체가 충격을 받았고, 테러범들의 동족인 체첸인들조차 경악하고 진심으로 분노했다.
한편 유일하게 체포된 가담자인 누르파샤 쿨라예프(Нурпаша Кулаев, Nur-Pashi Kulayev)는 북오세티야 법정에 넘겨져 법정 최고형인 무기징역이 확정되었고 시베리아에 있는 중경비 시설인 흰올빼미 교도소에서 알렉산더 피추시킨 등 다수의 흉악범들과 함께 수감 생활을 하는 중이다.
이 사건과 뒤이은 마스하도프의 죽음으로 체첸의 독립 시도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았던 이슬람권과 서방도 등을 돌렸다. 아무리 러시아가 싫어도 푸틴의 말마따나 어린이 살해범들을 편드는 건 어떤 이유로도 절대로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도 9년 전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로 168명이 사망하는 대참사를 겪었고 불과 3년 전에 9.11 테러를 겪었으니 당연히 이 테러범들을 응원해 줄 수가 없었다. 체첸 반군은 명백히 체첸인을 탄압하는 기구가 아닌 학교에 쳐들어가 전쟁과 전혀 상관없는 죄없는 아이들을 인질로 잡고 무차별적으로 쏴죽이기까지 한 정신나간 종자들이고, 이들을 국제사회가 인정해 줄 어떤 명분도 없다. 이쪽은 이슬람이란 이유로 극단주의도 포섭했고 그 결과로 극단주의자들이 민간인 상대로 테러를 자행했으니 독립을 인정해 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