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처럼 살다가 영화처럼 간 김기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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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처럼 살다가 영화처럼 간 김기덕 감독


2020. 12. 15.

그는 1960년 12월 20일 경상북도 봉화군에서 태어났다. 국민학교 3학년, 열 살 때 경기도 고양군으로 이주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국민학교를 나온 뒤 학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농업학교에 진학했다. 그래서 공식 최종 학력이 초졸인 그는 15살 때부터 구로공단과 청계천 일대의 공장에서 무거운 구리 박스를 지고 다니면서 일하고 기술을 배웠다. 그 당시 중학교에 너무나도 가고 싶었으나, 6.25 전쟁 상이군인으로 다리를 절었던 아버지가 나가서 돈이나 벌어오라고 매일 밤 그를 구타했다고 한다.

20세에는 해병대에 지원, 하사관으로 임관하여 5년간 복무했다. 제대한 후에는 공부해서 총회신학대학교에 입학하였고 남산 근처에 있는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시각장애인인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고 한다.

30세에 갑자기 모은 돈을 모두 가지고 프랑스로 떠나 3년 동안 파리에 거주하면서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고 길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독학으로 회화를 공부했다. 그런데 말이 회화 공부지, 거의 풍찬노숙에 떠돌이 생활의 연속으로, 생닭을 사서 뜯어먹을 정도였다.

32세 때, 낯선 땅 프랑스에서 떠돌이 무명 화가로서의 삶에 회의를 느끼던 때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우연히 영화를 보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급속도로 영화에 빠져들었다.

2020년 11월 20일, 러시아로 출국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거쳐 라트비아에 도착했는데 그 이유론 라트비아 리가 인근의 휴양도시 유르말라(Jūrmala)에 집을 구입하고 영주권을 얻기 위해서였다. 라트비아의 현지 언론 DELFI의 보도에 따르면, 입국 후 현지에서 도움을 주던 러시아의 영화 감독 비탈리 만스키(Vitaly Mansky) 감독과 12월 5일에 연락이 두절되었고 약속 장소에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만스키 등 지인들은 수소문해 보았지만 그의 행적을 못 찾다가 뒤늦게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입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뒤 급격한 코로나19 합병증 진행으로 2020년 12월 11일 새벽 1시 20분(현지 시각)에 사망했다. 대한민국에는 이 DELFI 보도를 인용한 러시아 언론 보도를 통해 처음 알려졌으며, 국내에 있는 가족과 지인들도 사망 소식을 통보받은 것으로 확인되어 사실로 확정되었다.

주라트비아 한국 대사관이 유가족들의 장례 지원을 약속했고, 유가족은 바이러스 창궐로 인한 사정을 감안, 장례를 대사관에 위임 후 현지에서 화장하여 유골함만 송환키로 했다.

그리고 2020년 타국에서 코로나로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