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흑인들이 백신을 믿지 못하는 이유, 미국판 마루타 '커스키기 생체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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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흑인들이 백신을 믿지 못하는 이유, 미국판 마루타 '커스키기 생체실험'


2020. 12. 8.


약 40년간 미국 앨라배마 주 터스키기(Tuskegee)에서 벌어진, 정부 주도하의 생체실험으로 1973년 봄에 실험이 중단되고 실체가 폭로되자 전미가 경악하였던 끔찍한 사건이다. '정부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 진료를 해준다고 해놓고 몰래 생체실험을 한다 카더라' 하는 루머가 현실로 드러난 셈이다.


1932년 미국 공중보건국에서는 매독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려고 하던 중 터스키기의 흑인들이 매독에 많이 감염되어 있고 가난한 탓에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생체 실험을 하기로 한다. 즉, 치료를 하지 않으면 매독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지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정부에서 파견된 의사들은 매독으로 고통받는 흑인들에게 '당신들은 지금 악혈(Bad Blood)이라는 병에 걸려있으니 치료해주겠다'고 속여 뇌척수액을 뽑고 검사를 했으며 아스피린과 철분제를 약이라고 나눠줬다. 이 실험은 1943년 매독을 치료할 수 있는 페니실린이 나온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정부는 해당 지역 의사들과 보건소에 공문을 보내 생체실험에 참여한 흑인들이 병원에 올 경우 그냥 돌려보내라는 요구를 했다. 그리고 1941년 제2차 세계 대전으로 터스키기 지역 청년들이 미 육군에 징집되었을 때 매독에 걸린 것이 발견되어 치료하려고 했지만 공중보건국에서 청년 256명의 명단을 건네며 이들을 치료하지 말라고 요청했고 육군이 이를 받아들이는 사건도 일어났다.


그러던 중 1966년 공중보건국에서 성병 조사 임무를 맡고 있던 피터 벅스턴이 실험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으나 묵살당하자 6년 후인 1972년에 직장을 그만두고, 신문기자 친구에게 제보하여 이 실험은 세상에 알려졌다.

결국 1973년 실험은 중단되었고 미국 상원에서 청문회까지 열리게 되었지만 생체실험에 직접 참여했던 의사들은 결코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그 사람들은 어차피 가난해서 치료도 못 받고 죽을 사람들인데 그냥 죽을 바에야 의학발전에 기여하고 죽는 게 낫지 않는가" 라고 발언하여 공분을 샀다.

결국 실험 생존자와 유족들은 정부에 소송을 걸어 총 9백만 달러의 보상을 받게 되었다. 이후 이 생체실험에 대한 반성의 일환과 미국의 연구윤리에 대한 스탠다드의 필요성으로 벨몬트 보고서가 1979년에 나왔으며, 1997년 5월 16일 빌 클린턴 대통령이 실험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백악관에 초청하여 공식 사과하였다.


이 터스키기 실험을 주도한 게 바로 죽음의 천사로 악명을 떨친 미 공중보건국의 '존 커틀러(1915 - 2003)' 박사이다. 1942년 의대를 졸업하고 공중보건국에 들어간 커틀러 박사는 각종 생체실험의 대가로 승진을 거듭했고 1967년 피츠버그 대학 교수로 자리를 옮긴 이후에도 생체실험을 계속했다.



이후 터스키기 실험을 추적하던 수전 레버비 교수가 2010년 10월 1일에 추가로 밝혀낸 바에 의하면, 1946~1948년 사이 페니실린의 매독 치료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과테말라의 수용소 및 교도소 수감자들, 매춘부, 군인들을 매독에 일부러 감염시켰다고 한다. 해당 실험을 진행한 것도 터스키기 사건의 주도자인 공중보건국의 존 커틀러로 알려져 있으며 이 사실이 발표된 당일에 바로 미 대통령이 직통 전화로 사과를 하고 국무장관과 보건장관이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고 한다. 2011년 9월 이 사건에 관한 조사보고서 중간 결과가 공개되었다. 무려 5500여 명에게 생체실험을 자행했으며 심지어 9세 소녀도 있었다고 한다. '백색 가운의 악마'. 잔혹성에 미국도 '소름' 현재 과테말라 정부와 국민들은 현재 미국 정부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 중이다.

게다가 이게 전부가 아니니, 1943년 뉴욕주 싱싱(sing sing) 교도소에서도 죄수들을 대상으로 임질 감염 생체실험을 자행했다. 이것도 역시 존 커틀러 박사가 주도했다.

현재 흑인사회에서 코로나19 백신을 불신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