숀 코너리는 초대 제임스 본드로 유명하며 또한 손꼽히는 미노년 배우이자 멋쟁이 대머리의 대명사이다. 덧붙이자면 미청년→미남→미중년(나이스 미들)→미노년의 황금 테크트리를 완성한 인물이다.
숀 코너리는 노동자 집안 출신으로 같은 시기의 대다수 영국 배우들과는 달리 정식 연기수업을 받지 않았다. 우유 배달부를 시작으로 영국 해군에서 수병으로 복무하는 등 잡다한 직업을 전전하다 미스터 유니버스 중량급에서 3위를 차지한 것을 계기로 연기 인생을 시작한다. 다만 당시 연기는 눈에 띄게 뻣뻣하고 어색해 단역을 전전하며 빈곤한 생활을 보냈다.
그러다 007 제임스 본드역에 캐스팅된 것을 계기로 절치부심한 끝에 명배우로 각성,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의 어색한 당시 연기는 007 캐스팅 직전에 찍은 영화 《지상 최대의 작전》(1962)[1]에서 볼 수 있는데 007 원작자 이언 플레밍은 이를 보고 고릴라같다고 혹평했고 다수 평론가도 동의한 바 있다. 그러나 제임스 본드 역으로 연기력이 발전한 후인 64년의 히치콕 영화 《마니》에서는 같은 사람 맞나? 싶을 정도로 안정된 연기를 보여준다.
제임스 본드 역과 함께 주로 액션이 필요한 배역을 많이 맡았지만, 자신의 이미지가 007역에 묻혀간다고 판단, 고심한 끝에 배역을 거절하고 홀로서기에 나섰다. 국적불명의 이탈리아 영화나 C급 괴작 영화에 출연하는 등 어려움도 있었으나 《오리엔트 특급살인》으로 메이저 작품 복귀에 성공, 재기하게 된다.
연기 도중 얼굴에 입은 부상으로 배우 생명이 위험에 처해 상처를 수염으로 가렸지만, 오히려 이후 그 수염이 그의 상징이 되었다. 넓어져만 가는 이마로 가발을 쓰거나 머리를 심는 등 헛된 노력을 계속했던 적도 있지만 결국 대머리 이미지를 밀어붙여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이런 이미지 변신 후 찍은 유명한 작품으로는 《더 록》, 《붉은 10월》,《장미의 이름》이 있다. 1987년 《언터처블》에서 케빈 코스트너를 돕는 노장 경찰 말론 역을 멋지게 소화해서 그 해 아카데미상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일부에선 《언터처블》에서 숀 코너리의 연기는 발연기라 불릴 만하며 오스카 수상 중 최악의 수상이라고 하기도 한다. 영화사 '''최고의 캐릭터 제임스 본드의 영화판 이미지를 구축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종의 공로상으로 받았다는 악평이 그것. 일단 그 당시 많은 평론가들이 공로상으로 간주했던 건 사실이지만 말론 경감은 흔히 말하는 '산전수전 다 겪은 현자' 캐릭터로 코너리의 연기는 '명품 조연'이라는 표현이 정확하게 들어맞을 정도로 일품이었다. 이는 '언터처블'에 대한 평론가들의 몇몇 평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의 연기는 '숀 코너리가 연기하면 숀 코너리가 그 배역이 되는 게 아니라 그 배역이 숀 코너리가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 연기가 일품인 것은 틀림없지만, 배역이 배우에게 먹혀버린다는 것이다. 게다가 은퇴할 때까지 말투에서 스코틀랜드 억양을 완전히 지우지 못했다는 약점도 있었다. 영화 《붉은 10월》에서 그가 맡은 마르코 라미우스 함장과의 싱크로율을 생각하면 그 말이 농담은 아닌 듯하다.
몇몇 평자들은 언터처블 대신 그가 출연한 시드니 루멧 영화들을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영화 《반지의 제왕》이 한창 준비 작업에 있던 1999년 간달프역을 제의받은 적이 있다. 당시 뉴 라인 시네마는 영화수입의 10~15%를 출연료로 지불하겠다는, 지금 보면 엄청난 제의를 했다. 만약 숀 코너리가 출연에 응했다면 그는 4050억원을 받았을 것이다. 숀 코너리라 하면 제임스 본드라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그 당시 뉴스의 댓글도 재미있다. 숀 코너리가 간달프를 하면 본드걸처럼 마법사 걸이 나온다든지... 하지만 숀 코너리는 원작 소설도 읽었고 대본도 읽었지만 반지의 제왕 스크립트를 난해하다면서 이해할 수 없다고 했고 뉴질랜드에서 18개월이나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에 불만을 표시하며 거부했다. 그 직후인 2000년에 기사작위(Knight Bachelor)를 받았다.
2003년 《젠틀맨 리그》에 출연했으나 이 과정에서 감독인 노링턴과 극심한 마찰을 빚었고 더 이상 연기를 하는 것에 환멸을 느껴 2006년에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스티븐 스필버그로부터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에 헨리 존스 박사 역으로 다시 나와달라는 제의를 받았고 은퇴 번복을 진지하게 고민했으나 스필버그와의 예술관의 차이와 은퇴생활의 즐거움, 그리고 헨리 존스 박사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조연이라는 이유 때문에 결국 포기했다. 이후 2005년 인터뷰에서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 대해서 멍청한 제작자들이 능력있는 배우와 감독들을 질식시키고 있다고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이에 대한 질문이 계속되자 2006년, 조지 클루니, 스티븐 소더버그, 숀 펜 등을 근면하고 창의력있는 인물들이라고 언급하면서 돈 벌 생각밖에 없는 멍청하고 게을러빠진 할리우드 영화 시스템의 희생자들의 예시로 제시했다. 젠틀맨 리그 제작 과정에서 한이 굉장히 많이 쌓인 듯.... 다만 2006년의 은퇴 선언 이후에는 그렇다고 해서 감독들이 자신을 다시 불러내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마피아들의 '거절할 수 없는 제안' 수준의 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영화 복귀 가능성은 완전히 끝난 것으로 보이며 2010년 8월 25일 80세 생일에 공식적으로 배우 은퇴를 재확인했다. 실사 영화 마지막 연기는 위에서 언급한 젠틀맨 리그다. 2011년, 코너리의 친구인 마이클 케인은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코너리에게 새로운 영화를 제작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가 절대로 안한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전했다. 더불어 마이클 케인은 코너리의 은퇴가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코너리에게 노인 조연 외에는 더 이상 시키려 하지 않아서 코너리가 실망한 것이 코너리의 중대한 은퇴 사유 중 하나라고 전했다. 코너리는 로맨스 연기를 좀 더 하고 싶었었다고...
다만 실사 연기 이후에도 성우 연기는 가끔 하고 있는데 2005년 그의 1963년 출연작이었던 007 위기일발이 게임화되자 제임스 본드 성우로 잠시 복귀했었다. 코너리 자신이 007 영화 중에서 위기일발을 자신이 제일 좋아하며, 손자들이 비디오 게임을 워낙 좋아해서 하기로 했다고. 2012년에는 애니메이션 미스터 빌리: 하일랜드의 수호자(원제: Sir Billi the Vet)의 주인공인 빌리의 성우를 맡기도 했다. 성우도 주인공 역만 맡은걸 봐서 노인 조연 역할에 지쳤다는 설명이 설득력이 있긴 한듯하다.
은퇴 이후로는 한동안 인터뷰를 제외하고는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였다. 세금문제 때문에 바하마에서 주로 거주하는 이유가 컸다. 세금문제는 지금도 코너리의 발목을 잡는 이슈인데, 2010년에는 스페인 마르벨라의 카사 말리부에서 지방정부의 허락 없이 70여채의 호화 아파트를 건설하고 매각하고, 그 수익을 탈세한 혐의로 스페인 당국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결국 2015년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으나 이미지는 상당히 구겼다.
2013년에 돌연 알츠하이머설에 휩싸였다. 절친이라 불릴 만한 배우 마이클 케인이 인터뷰 도중 '숀이 요즘 기억력 감퇴로 고생한다'라고 언급했다며 독일의 언론 매체가 보도를 때린 것. 마이클 케인은 '(독일 언론 매체와는) 숀의 병세에 대해 다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며 매체가 자신의 발언을 왜곡해서 보도했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2014년에 스코틀랜드 독립 운동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2015년 2월에 건강해 보이는 모습이 미국 마이애미 공항에서 목격되었기에 알츠하이머설은 그냥 루머로 여겨지는 듯하다.
한동안 조용히 지내다가 2014년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때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운동의 열성적인 지지자로 전면에 나서서 독립 찬성 단체인 예스 스코틀랜드(Yes Scotland)에 기부하는 등 독립에 한표를 던지자고 호소하였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세금 문제 때문에 아내와 함께 바하마에서만 거주하고 있으며 영국에는 1년에 90일 정도도 안 있는다. 이 때문에 스코틀랜드 독립을 지지하고 나서도 스코틀랜드 귀환은 안해서 구설수에 올랐고 독립 반대론자들은 스코틀랜드가 독립하거들랑 코너리를 끌고와서 세금 뜯어내면 될 것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2020년 10월 31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가족의 발표에 따르면 수면 중에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