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치는 기르던 주인이 죽은 뒤에도 역 앞에서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던 일본의 아키타견이다. 충견 하치공이라고도 한다.
아키타 현 오다테 시에서 1923년(다이쇼 12년)에 태어났는데 원래는 사이토 요시카즈라는 사람의 집에서 태어난 강아지였으나 사이토가 평소에 신세를 많이 진 도쿄제국대학 농학부의 교수에게 강아지 두마리를 보낸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하치였다.
우에노 교수는 아키타견(일본의 국견)을 좋아해서 여러 번 길렀지만 번번히 죽어서 상심하던 차에 몸이 약한 하치를 극진히 돌보았다. 그래서 하치는 건강해지게 되었고, 다 자란 뒤에는 매일 문앞까지 주인을 배웅했고 시부야역까지 따라가거나 마중을 나왔다. 하치 외에 포인터 종류의 존과 S라는 이름의 개도 하치와 함께 주인을 마중나왔다.
그러나 우에노 교수는 1925년 5월, 교수회의를 마치고 다른 교수와 이야기를 하던 중 뒤로 쓰러져 급사하고 만다. 아무것도 모르던 하치는 농학부 정문앞에서 주인을 기다렸지만, 주인이 나오지 않자 집으로 돌아가 3일 동안 헛간에서 식음을 전폐했다.
이후 우에노 교수의 부인에 의해서 부인의 팔촌 친척에게 맡겨졌지만 문제가 있어 다시 시부야로 돌아왔고 이후 이집 저집을 전전하게 되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늘 시부야역에 죽은 주인을 마중나왔다. 그러나 떠돌이 개인줄 알고 개장수가 잡아가거나 장사에 방해된다고 상인들이 하치를 구박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던 중 "일본 개 보존협회"를 조직한 사이토 히로시가 상인들에게 구박받는 하치를 목격하고 불쌍히 여겨 아사히 신문에 하치의 사연을 기고하여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고 유명해지게 되었다. 하치의 한쪽 귀가 늘어진 것 때문에 잡종이 아니냐는 논란도 일었지만 공식적인 설명은 잡종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고 피부병 때문이었다고.
하치는 사람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주인을 마중하는 걸 멈추지 않다가 1935년 3월 8일, 개에게 치명적인 필라리아(심장사상충)로 사망한다. 떠돌이 개가 되어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충견 하치코 이야기는 전 일본인들의 심금을 울렸으며 생전에 유명해지자, 하치코의 상을 만들어 쇼와 덴노에게까지 바쳤다.
하치코 동상은 태평양 전쟁 당시 금속공출로 헐려 녹여지는 수모를 겪었다. 이후 1948년에 다시 동상이 세워져 시부야역 광장 중앙에 있다가 시부야역이 확장개보수를 하면서 위치가 현재의 자리로 옮겨지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 하치코 동상 주변은 시부야역 일대 최고의 만남의 장소로 지금도 이용하고 있으며 시부야역의 대표적인 랜드마크가 되었다. 문제는 근처에 흡연장이 있다는 것. 담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유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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