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자본시장(특히 주식시장)의 질적 변화를 가장 빠르게 잡아낼 수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주총회장이라 할 수 있다. 대주주를 포함한 기업의 주주들은 모두 각자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주총회장은 각각의 이해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전장이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엄밀히 따졌을 때 대한민국 자본시장에서 주총을 통해 볼 수 있는 거버넌스 체계가 크게 개선된 것은 문재인 정부의 집권이 그 역할을 가장 크게 한 것이 사실이다. 이전 정권 때에는 사실상 큰 의미가 없었던 주주총회라는 것이 정말 어렵고 힘들어진 것이 문재인 대통령 집권 이후이기 때문이다.
2017년 이후 자본시장에서 발생한 가장 큰 거버넌스적 변화라 한다면 (1)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2) 상임감사 선출시 의결권대리제도 일몰 (3) 기업 거버넌스에 대한 투자자들의 전반적 의식 변화 및 지식의 축적 세 가지로 따져 볼 수 있다.
여기서 (1)과 (2)는 제도적 변화이고, (3)은 제도적 변화에 의해 시장에서 이전보다 광범위한 정보 탐색이 밀도있게 이뤄지면서 나타난 현상인데, 이를 세부적으로 알아 보면 아래와 같다.
1. 주주총회에서 감사위원의 선출 시 이해관계 상충 여부에 대한 검증이 한층 강화됐다. 특히 감사위원은 법률인이 임명되기 마련이기 때문에, 해당 법률인의 소속 로펌과 기업 간의 과거 거래관계 존재 여부가 낱낱이 파헤쳐진다. 2017년부터 일어난 변화다.
2. 사외이사 선출 시 이사회 출석률 허들이 상당히 높아졌다. 이전과 같이 이름만 걸어 놓고 불성실하게 이사회에 임하던 사외이사들은 재선임 반대가 늘어나고, 대신 성실하게 이사회에 출석한 사외이사의 가치가 더욱 높아지는 것이 눈에 띄게 드러난다. 즉 양화가 악화를 구축할 수 있게 됐다.
3. 국민연금이 선제적으로 스튜어드십코드(의결권 행사에 대한 항목별 규정)를 도입함에 따라 타 대형 기관투자자들도 스튜어드십팀을 별도로 마련하는 경우가 늘어났고 이는 전반적으로 시장의 기업 거버넌스에 대한 감시체계를 강화시켰다. 아무렇게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뜻이다.
4. 강화된 감시체계에 따라, 국내외 의결권 전문 기관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이들의 영향력이 증가하며 이것이 이슈화되고, 이러한 것들이 시장에서의 자발적인 정보 축적으로 이어졌다. 이제는 개인투자자들도 기업 거버넌스에 대해 학습을 하고 의견을 더욱 적극적으로 낸다. 과거 시총 상위주 위주였던 주총 분쟁이 중소형주까지 확대되는 모양새다.
5. 상임감사 선출 시 의결권 대리 제도가 일몰함에 따라 이 경우 주총 의결정족수 확보가 무척 중요해졌다. 투자자들은 상임감사가 자격 미달이라고 판단할 경우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는 방식으로 실질적 반대의사를 표명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적격 감사를 후보로 내세워야 할 부담이 커졌다.
물론 이러한 변화로 인해 사실 실무를 하는 금융업계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많이 힘들어진 것도 사실이다. 이전까지는 어느 정도 양해를 하고 넘어갈 수 있었던 것들 하나 하나를 모두 면밀하게 검증하지 않으면 투자자들에게도 거센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가장 큰 예시가 바로 이번 LG 화학 물적분할 관련 분쟁이다.
실제로 과거 물적분할은 인적분할보다 분쟁의 요인이 적었다.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인적분할은 분할되는 회사의 주식을 분할전 회사의 주주가 얼마만큼 받느냐가 분할되는 회사의 가치 책정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다툼이 매우 심했는데, 물적분할은 100% 자회사이므로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물적분할 후 상장’ 이라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소액주주들도 자신의 보유지분 가치가 희석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년간의 정보 축적으로 통해 이제 다들 학습이 됐다는 것이다. 물론 제도의 변화가 이러한 정보 축적을 모두 이끌어 낼 수는 없다. (당연히 소액주주들이 정보를 얻는 방법의 난이도 자체가 낮아졌으므로)
하지만 기업의 거버넌스에서 감시 체계가 상당히 다층화됐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스튜어드십코드는 박근혜 정부 시절부터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으나 재계가 강하게 반발했으며 국회 내에서도 사실 논의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임기 말의 대규모 스캔들로 인해 촉발됐다면 모를까 정권이 바뀌지 않았다면 도입이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 및 장기보유자에게 이득을 주는 조세제도의 개혁 등 우리 자본시장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매우 많다. 그러나 항상 우리 경제의 문제로 지적돼 왔던 거버넌스의 뒤틀림이 제도적으로 해결될 바탕을 마련했고 그것이 서서히 느리지만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