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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 장편소설 '태평천하' 줄거리



태평천하는 채만식의 장편소설 《탁류》와 함께 채만식의 2대 장편소설로 언급된다.
소설의 시작은 구두쇠 윤 직원이 억지를 부리며 인력거 삯을 깎고, 버스비를 안내려 하는 에피소드에서 시작한다. 

윤 직원의 아버지 윤용규는 도박꾼으로 하루하루 돈이나 잃는 사람이었지만,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돈으로 지주와 고리대로 돈을 긁어모은 사람이다. 그런 아버지가 관리들의 토색질로 괴롭힘당하고 화적떼의 손에 목숨을 잃은 것을 봐왔던 윤 직원은, "이놈의 세상 언제 망하느냐?! 우리만 빼고 어서 망해라!"라고 외치면서 아버지보다 더 지독하게 돈을 긁어모아 갑부가 되어 경성에서 떵떵거리고 산다. 

일제강점기에 사는 윤 직원은 "토색질도 없고 화적질도 없는 이 세상이야말로 태평천하"라고 외치면서, 중일전쟁에 대해서도 "이 훌륭한 일본의 통치를 거부하다니 역시 중국놈들은 무지몽매한 놈들" 하는 반응을 보이고, 기부나 자선에는 인색해하면서 경찰서 무도관을 짓는데는 돈을 아낌없이 베푼다.

한편으로 윤 직원은 자신의 부족한 명예를 채우기 위해 애를 쓰는데, 자신은 향교에서 돈으로 직원 자리를 사고 족보를 조작한다. 또 두 손자를 각각 군수, 경찰서장 감으로 보고 손자들의 출세를 위해 엄청난 돈과 시간을 퍼붓는다. 그러나 윤 직원 가문은 말 그대로 콩가루 집안.

당장 윤 직원 자신도 첩 사이에 자기 증손자랑 동갑인 늦둥이가 있고 그것도 모자라 소작인의 딸인 증손자 또래의 소녀를 새 첩으로 들인 상태. 아들 윤 주사는 술과 마작에 빠져 하루하루 돈을 시궁창에 갖다 박고 앉아있다. 큰 손자 윤종수는 하라는 군수는 안 하고 부전자전으로 항락에 빠져 살고 심지어는 아버지의 첩 옥화와 불륜을 저지르기까지 한다. 며느리와 손자며느리도 남편이 밖으로 나돌아다녀 하루하루 불만만 쌓이고, 증손자 윤경손도 땡땡이는 일상이요 증조부의 소녀 첩에게 수작질이며, 양반가로 시집을 보낸 딸은 남편이 죽고 소박맞아 한 집에 산다. 

그래도 윤 직원은 가부장적인 태도로 집안을 이끌며, 일본으로 유학 간 작은 손자 윤종학이 경찰서장이 되는 날만을 기다린다. 그러나 어느날, 윤종학이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그 이유가 윤종학이 사회주의 운동을 했기 때문이라는 사실까지 알자 "이 태평천하에 그게 무슨 짓거리냐"면서 멘붕에 가까운 충격을 받는다.



아마도 중고등학생들이 "반어적 표현"을 잘 사용한 소설을 배울 때 이 소설로 스타트를 끊었을 것이다. 작가인 채만식은 비슷한 주제에 비슷한 형식의 소설인 〈치숙〉을 쓴 바 있다. 이 소설의 주제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개인의 안위를 위해 국가와 민족을 살펴보지 않는 일제 당시의 친일파들을 비판하는 것'이 되겠다. 

애당초 위에도 나와 있듯이 윤 직원이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우리만 빼고 어서 망해라!"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윤 직원에게 일제는 자신의 권력과 안위를 지켜주는 수호신이나 다름 없으며, 그런 일제에 저항하려는 당시 지식인들이 파던 사회주의에 동참한 자신의 둘째 손자는 그야말로 역적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소설의 마무리에 "태평천하"라면서 울부짖는 윤 직원의 모습이 이 소설의 주제를 잘 부각했다고 한다. 소설의 제목인 '태평천하'부터가 이러한 반어적 표현. 다만 비판하는 건 좋았는데 그 다음에 채만식이 어쩔 수 없긴 했지만 친일 행위를 하게 되면서 "당신이 할 말이 아냐" 하면서 비판하는 움직임도 많았다. 채만식은 광복이 된 다음에 스스로 사죄하기는 했지만.

비단 왜정 때가 아니라, 자신의 안위만 확보되면 그 시대를 '태평천하'로 판정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이런 면에서 이 작품은 시대를 초월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요즘도 위 대사에서 명사 몇 개만 바꾸면 딱 들어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