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영화 감독. 역대 세계 흥행 순위 1위 영화인 아바타, 2위인 타이타닉(재개봉 포함)을 만든 세계 최고의 흥행 감독. 조지 루카스만큼 할리우드의 영상제작 기술의 수준을 높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대표적인 예로 터미네이터2와 어비스, 타이타닉, 아바타가 있다. 존 포드나 하워드 혹스처럼 이야기의 깊이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기술과 SF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영상에 완성도 높은 고전적인 이야기를 합쳐,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였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올바른 표기는 제임스 프랜시스 캐머런이다. 성씨를 발음에 따라 적으면 '캐머런【kæmərən】'이 되지만, 철자 표기에 이끌려 '카메론'으로 적게 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같은 성씨를 쓰는 영국의 전 총리 David Cameron은 '데이비드 캐머런'이란 표기가 널리 쓰이고 있다. 친한 사람들은 그를 부를때 짐이라고 부른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 생으로 아버지는 전기기술자, 어머니는 화가였다. 17살에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 50년대 B급 SF 영화에 빠져 들었고, 어린 시절부터 잡동사니로 로켓, 비행기, 탱크 등을 만들면서 미니어처 제작의 습작기간을 거쳤다.
독서광이었던 카메론은 특히 자기가 좋아하는 SF물을 탐독하며, 그 시각적 상상력을 표현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카메론은 아버지에게 카메라를 빌려, 16mm 영화 습작과 미니어처를 직접 만들어 특수효과도 실연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을 중퇴한 카메론은 결혼을 하고, 트럭 운전사나 만화가 어시스턴트 등의 직업을 전전한다. 그러다 《스타워즈》를 보고 엄청난 컬처쇼크를 받고, 일을 그만 두고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뛰어들 결심을 굳히게 된다. 그리하여 친구와 함께 만든 단편 습작영화 《제노제네시스》가 좋은 평가를 받아, B급 영화, 저예산 영화를 흥행시켜 수익을 남기는 걸로 유명했던 로저 코먼의 뉴 월드 픽처스에 들어간다.
로저 코먼의 수하에서 《우주의 7인》(1980)의 미니어처를 제작한 것이 첫 영화 작업. 이 외에도 《뉴욕 탈출》(80)이나 《공포의 혹성》(80) 같은 B급 SF 영화의 디자인과 특수효과에 참여해, 제작자들에게 눈도장을 찍는다.
그리하여 《피라냐 2 Piranha Part Two: The Spawning》(81)로, 염원하던 감독으로 데뷔하게 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의 인생에 있어서 기억하기 싫은 악몽만 남게 된다. 아니, 월간 《키노》 같은 잡지에서도 유명 감독의 최악 데뷔작으로 손꼽힌다고 썼을 정도였다. 사실상 이탈리아 영화인 이 물건은 제작자 오비디오 G. 아소니티스의 잔머리로 인해, 감독이 확정되지 않던 와중에 제임스 카메론에게는 명분상 감독 자리만 주었다가 도중에 잘라버렸고, 실제로 그는 제대로 감독을 맡지도 못했다. 결국 카메론은 몰래 영화 사무실에 잠입해 이 영화의 편집이라도 맞춰놓으려 시도했으나, 이 또한 이탈리아 스태프진들이 도로 원래 편집으로 돌려놓았고, 결국 영화의 최종판은 희대의 괴작이 돼 버리고 말았다. 훗날 로저 코먼에게 왜 망했는지를 물었더니, '식인 피라냐가 물속에서 보이지 않을 때 관객들은 무서운 법인데, 노골적으로 하늘까지 날아다녀서'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사실 영화를 보면 하늘을 날기는커녕 피라냐 인형을 사람들에게 집어던져서 찍었다! 그나마 이후 콜롬비아를 통해 미국의 부가시장에서 출시됐을 때는, 그가 다시 편집을 손대서 출시했다고 한다. 얼마나 한이 맺혔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 더불어 한국 비디오는 물론 해외 비디오(표지에선 《에일리언 2》, 《터미네이터 2》, 《타이타닉》의 감독임을 강조했다) DVD까지 그의 데뷔작이라 강조하면서 팔아먹고 있다. 이제 블루레이까지 나와서 《아바타》를 크게 앞표지에 쓸지도 모른다. 그리고 가끔씩 자학개그로도 사용한다. 날아다니는 피라냐가 나오는 영화 중에서는 최고의 영화라고.
개판이 된 영화지만 카메론이 유명해지자 영화는 카메론의 데뷔작이라는 홍보로 알려졌다. 87년에 대우비디오 클럽에서 내놓은 한국 비디오판만 해도 터미네이터의 제임스 카메론이 감독했다라는 문구를 뒤에 넣어서 이걸 보고 당시 터미네이터를 극장이나 삐짜비디오(터미네이터는 1989년에서야 세신영상으로 비디오 정발)로 재미있게 본 이들이 빌려보았다가 쌍욕을 퍼부은 전설이 있다 카더라.... 이는 미국이나 해외 출시판 비디오도 마찬가지라 일본 출시판 비디오에선 터미네이터와 에일리언 2 감독 데뷔작이라고 앞 표지에 썼으며 이는 영어판도 그렇다.
그리고 2000년대 와서 나온 DVD는 타이타닉, 터미네이터,에일리언 2의 감독 영화라고 홍보하고 결국 블루레이까지 나와서 아바타를 표지 홍보에 넣으며 감독 이름으로 열심히 팔아먹고 있다....
《피라냐 2》로 개고생하던 그 시절 어느 날, 카메론은 로마에서 촬영기간 중 머물던 어느 싸구려 호텔에서 고열로 앓아누웠는데, 끔찍한 모습의 기계 인간이 불 속에서 서서히 일어나는 악몽을 꾸었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터미네이터》의 시나리오를 쓰고, 제작자 게일 앤 허드를 찾아가, 《터미네이터》의 속편을 비롯한 모든 권리를 1달러에 넘길 테니, 자신을 감독으로 기용하라고 제안한다.
원래 영화사는 시나리오만 구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대부분의 경우는 시나리오도 잘 안 팔린다. 하지만 워낙 시나리오가 괜찮다 싶을 경우에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감독 계약까지 해주는 경우가 있다.
카메론 감독의 실질적인 감독 데뷔작이자 미래 사회의 암울한 묵시록이 담긴 SF 액션 영화 《터미네이터》(1984)는 640만 달러라는 비교적 저예산으로 제작되었고, 개봉 직후, '테크 느와르'란 호평과 함께 미국에서만 3840만 달러, 해외에서는 8000만 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올려서, 거의 제작비 20배에 육박하는 대성공을 거뒀다. 이때부터 그의 형편이 피기 시작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터미네이터의 성공 후, 캐머런은 《람보 2》(1985)의 각본을 맡은 뒤, 《에일리언 2 Aliens》(1986)의 감독으로 발탁된다. 《람보 2》와 《에일리언 2》는 속편은 성공하기 힘들다는 영화계 속설을 깨부수며 대성공을 거두었고, 계속되는 성공으로 카메론은 영화사의 돈을 맘대로 쓸 수 있게 된다.
이후 카메론은 《어비스 The Abyss》(1989),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 Terminator 2: Judgment Day》(1991), 《타이타닉 Titanic》(1997) 등을 감독하며, 새로운 특수 효과를 개발해가면서 시각 세계의 표현 영역을 넓히는 데 주력했다.
바다를 배경으로 과학 기술의 오용이 가져올 위험성을 경고하는 《어비스》는 전작과 달리, 역동적인 액션보다 중년 부부의 헌신적인 사랑과 미지와의 조우를 해저 심연에 펼쳐낸 카메론의 SF 동화였다. 7000만 달러를 들인 《어비스》는 평은 좋았으나, 대중들이 즐기기엔 다소 심심한 내용이 되었던 데다가, 비슷한 시기에 제임스 카메론이 심해 소재 영화를 만든다는 소문이 퍼졌다고 한다. 이에 흥행 감독인 그가 만든다니 나도 해보자는 식으로 심해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줄줄이 쏟아졌다. 예를 들어 《레비아탄》, 《딥 식스(DeepStar Six, 1989)》, 《심해 에이리언(Lords of the Deep, 1989)》, 《해저의 암살자(The Evil Below, 1989)》, 《마의 해역(The Rift, 1989)》 등등이다. 이런 이유로 카메론이 직접 감독한 메이저 영화중에서는 처음으로 상업적으로 실패하게 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개발된 신기술은 이후 《터미네이터 2》에서도 유용하게 활용되었으며, 내용적으로도 《타이타닉》을 비롯한 훗날 카메론 영화의 원형을 담고 있다. 과학 기술과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적 지지, 희생적인 사랑에 의한 구원의 모티브는 카메론의 승부수다.
《어비스》에 이어 1억 200만 달러가 투입된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 Terminator 2: Judgment Day》(1991), 1억 2000만 달러의 《트루 라이즈 True Lies》(1994), 급기야 2억 달러 이상의 제작비를 퍼부은 《타이타닉》까지, 카메론은 할리우드 영화의 제작비 상승을 주도해왔다. 그는 《어비스》의 디지털 특수 효과로 만들어낸 의인화된 물 캐릭터, 몰핑기법으로 창조한 《터미네이터 2》의 T-1000의 변신 장면, 《트루 라이즈》의 1/4을 차지한 구분이 모호한 실사와 컴퓨터 그래픽의 합성 등 불가능해 보이는 표현의 한계에 도전했고, 매번 기록을 경신했다.
또한 그의 영화는 《어비스》를 빼놓고 모두 큰 성공을 거뒀다. 그 자신이 특수 효과 제작자로서 영화계에 뛰어들기도 했던 만큼, 모형 제작의 달인이자 특수 효과 제작자인 스탠 윈스턴과, 특수 효과 전문 업체인 디지털 도메인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때까지 제임스 카메론은 그저 SF 액션 영화를 뛰어나게 잘 만드는 감독이라는 ‘부당한’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특수 효과의 향연과 스펙터클, 멜로 드라마의 문법을 결합한 《타이타닉》은 최고의 테크놀러지를 동원해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장인(匠人)의 경지를 보여줬고, 199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한 14개 부분에 노미네이트되어 이 중 11개 부문을 수상하면서 그런 평가를 일축하였다.
특히 타이타닉은 제작비가 당초의 예산을 초과하자, 감독으로서의 보수를 포기하는 것은 물론, 만약 《타이타닉》이 흥행에 실패하면, 《터미네이터 3》를 무보수로 찍어준다는 약속도 하면서 제작에 매달렸다고 한다. 미국 내 수익과 해외 수익을 합쳐, 1년 동안 무려 18억 4000만 달러를 벌어들인 《타이타닉》은 총수익 9억 2000만 달러를 벌어들인 《쥬라기 공원》의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을 무려 2배 이상 깨고, 영화사(映畵史)상 최고의 제작비를 들여 최고의 수익을 올린 전대 미문의 블록버스터가 되었고, 카메론은 10여 년간, 《쥬라기 공원》, 《스타워즈》, 《E.T.》 등으로 치열하게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뺏고 빼앗기는
경쟁을 해 온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를 제치고 새로운 패왕에 등극했다. 심지어 이 기록은 아직까지도 자신의 《아바타》 빼고는 제친 작품이 없다. 심지어 15년도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조차 최종 20억 달러 흥행으로 3위에 그쳤다. 1위는《아바타》27억, 2위는 《타이타닉》 (재개봉 최종 21억)
정말 당시로서는 엄청난 흥행 기록인데, 일단 15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한 것은 운이 좋았다고 치더라도, 그 어떤 작품도 넘지 못했던 북미 5억달러의 흥행을 넘어 6억 달러라는 전대미문의 흥행을 기록했다. 그리고 우습게도 아무도 넘지 못하던 7억달러의 흥행은 그 자신이 만든 《아바타》로 넘어섰다.
또한 《쥬라기 공원》 조차도 근접하기만 했고, 넘지 못하던 월드와이드 10억 달러 흥행의 기록을 최초로 세웠고, 그걸로도 모자라 마구 마구 올라가서 20억 달러에 근접한 18억 달러의 수익을 벌어들였으니, 당시의 《타이타닉》의 흥행 기록은 충공깽.(이후 3D로 재개봉하여 최종적으로 21억 달러의 흥행을 기록했다.
심지어 《타이타닉》 첫 개봉이 지나고 17년 뒤 2015년 개봉한, 엄청난 대박을 터뜨린 《쥬라기 월드》가 전 세계 흥행 기록은 포기하더라도, 아바타의 북미 기록만이라도 넘어보려고 갖은 용을 썼으나 타이타닉도 넘어서지 못했다. 물론 타이타닉의 북미 기록은 쥬라기 월드가 아닌 다른 영화가 깨뜨리게 된다. 아바타까지도 넘어서는 10억달러에 육박하는 흥행기록을 세웠지만 전세계 흥행은 3위에 머물렀다. 스타워즈의 인기가 북미에 편중되어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처럼 《타이타닉》이 상상을 뛰어넘는 초대박을 치자, 제작사인 폭스와 파라마운트에서는 카메론에게 무려 1억 달러(약 1000억 원)의 보너스를 따로 주었다.
사실 이는 보너스라기보다는 추후에도 우리와 계속 같이 해달라는 의미로 주었다고 보는 게 맞다. 북미 5억 달러를 넘은 작품도 없고 월드와이드 10억 달러를 넘은 작품도 없었는데, 《타이타닉》은 그 기록을 다 깨뜨려서, 북미 6억 달러, 전 세계 18억 달러(한 번 언급했지만 추후 3D 버전으로 재개봉하면서 22억 달러에 육박했다. 재개봉해도 3~4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위엄을 보라)을 벌었으니, 영화사에서는 당연히 반드시 붙잡고 싶어할 만하다.
카메론이 타이타닉을 찍은 진짜 목적은 영화제작은 핑계고 바닷속에 가라않은 타이타닉을 탐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의 최대 관심사는 우주와 바다이고 특히 심해는 마치 외계생물들이 가득한 SF의 세계 같다고 그래서 직접 잠수함에 타 바닷속과 타이타닉을 촬영하고 당시 기준으로 가장 깊숙히 바다속으로 들어가는 기록도 세우게 된다. 이렇게 바다와 심해를 탐사하면서 그와 관련된 소소한 다큐들을 내놓았다. 엄청난 흥행 신화를 썼기에 언제 다시 메가폰을 잡고 복귀하느냐가 헐리웃의 초미의 관심사였지만, 카메론은 다큐멘터리 영화들, 혹은 영화 제작에 잠깐 참여할 뿐 실질적인 영화감독 복귀는 하지 않았다. 이런 일들로 인하여 타이타닉의 엄청난 흥행으로 인한 부담감에 카메론이 고통받는다는 루머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이런 소문과는 달리 카메론이 신작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0년도에 일본의 SF 만화인 총몽의 영화화 판권을 사들였으며, 폭스를 통하여 도메인도 등록하였다. 그리고 2003년도에 자신이 직접 감독하여 2007년에 개봉하겠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그러나 총몽 즉 알리타: 배틀 엔젤은 카메론의 또 다른 야심작인 프로젝트880에 의하여 뒤로 밀려나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 880이 이름하여 《아바타》로 《타이타닉》으로 90년대 후반을 휩쓸었던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감독 복귀작이 됨으로서 아바타의 제작에 대한 일거수일투족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이에 카메론 감독은 영화사에 남을 영상 혁명을 보여주겠다고 호언장담했으며, 3D 영화라는 점, 20세기 폭스에서 제작비에 관하여 무제한으로 허가해줘서, 제작비가 자그마치 4억 달러에 달한다는 점 등이 알려지면서, 대중들의 반응은 엄청난 기대 혹은 저러다 망하면 어쩌나, 라는 걱정으로 양분되었다.
2009년 12월, 드디어 카메론의 12년 만의 신작 《아바타》가 개봉하였으며, 초반 로튼토마토 100%를 받고 전야제부터 매우 커다란 열기를 모았다. 그리고 극장 개봉 2개월 만에 결국 12년간 흥행의 아성을 지켜오던 《타이타닉》의 기록을 뛰어넘었다. 끝을 모르는 흥행 기록은 계속되어, 결국 최종 27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수치의 흥행을 달성했다.
영화계의 우사인 볼트.
《아바타》의 흥행 2년 후, 제임스 카메론 제작, 알리스터 그라이슨 감독의 《생텀》이 미국에서 첫 주 2위로 개봉되었지만, 흥행 성적은 944만 달러로 부진했다. 이 영화는 《솔라리스》와 다르게 영화 평이 좋지 않아서 미국 흥행은 2,320만 달러라는 초라한 기록이 나왔지만, 해외 흥행은 조금 잘 나와 전 세계 흥행 1억 800만 달러가 나왔기에 그럭저럭 수익은 올렸다. 참고로 이 영화 제작비는 3000만 달러로 꽤 저렴하게 만든 영화이다. 한국에서는 첫날 관객 수가 4만 5,466명을 동원하여 2위로 데뷔했고 첫 주 관객 수는 총 28만 7,541명을 기록하여 3위로 등극했다.하지만 그 다음 주에 8위로 급락했으며, 총 관객 수는 46만 명을 기록했다.
단, 《솔라리스》와 《생텀》의 경우 제임스 카메론은 '제작'을 한 것이고,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책임은 각 감독들에게 있는 것이다. 사실 제작자가 영화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 지나치게 간섭하는 경우들이 헐리웃에서는 드문 일은 아니고 그런 일로 제작자들에게 흥행실패의 책임이 지워지는 경우가 많긴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분명히 존재하며 중요한 점은 카메론 또한 본인이 감독이고 그리고 피라냐2를 찍으면서 제작자들의 그런 식의 행태에 호되게 당한 만큼 제작자의 입김하에 감독은 찍기만 하는 제작행태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아이디어와 자본을 연결해주고 틈나는 대로 확인만 하는 한국 영화 스타일의 제작방식으로 진행했을 가능성이 높다. 제임스 카메론은 감독으로서 망한 것은 《피라냐 2》를 제외하면 없다. 그리고 그 《피라냐 2》조차도 위에 나왔듯이 애송이 감독 시절 10% 정도만 찍다가 제작자의 입김으로 모가지 당해서, 카메론이 책임질 잘못도 아니다. 물론 흥행으로 치자면 《어비스》가 망하긴 했다. 그러나 어비스는 작품성에 대한 평은 괜찮고, 이후의 작품을 위한 특수 효과 실험이라는 면도 있다.
카메론이 아바타 촬영장에서까지 갈리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을 정도로 애정을 과시했던 알리타: 배틀 엔젤은 계속해서 뒤로 미뤄지다가 카메론이 아바타의 후속작을 5편 까지 제작하게 됨으로서 감독직을 로버트 로드리게즈에게 넘기고 자신은 제작자로 남기로 결정됐다. 한때는 누구에게도 감독직을 주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나이도 있고 아바타 속편들의 제작과 개봉시기도 계속해서 미뤄지니 자신이 신뢰할 만한 감독을 찾아 맡기기로 한 것. 총몽의 팬들은 희망고문이 끝났서 반갑기도 하지만 카메론이 제작자로 남아 아쉬워 하기도 한다.
이 감독의 작품을 보면 알겠지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현대화된 기계문명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어떻게 보면 테크놀러지를 비판하기 위해, 정작 최신의 테크놀러지를 아낌없이 퍼부어가며 만든다는 게 참 아이러니. 이 때문인지 가족 구성원 전체가 비건 채식주의자라고 한다. 그리고 감독한 영화 목록들을 보면 알겠지만, 바다와 우주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의 영화는 유독 푸른 색채가 강하다는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파란색을 좋아한다. 파란색은 우주, 심해, 금속성의 물체를 표현하는 데에 빠져서는 안 될 색이기도 하고, 특수효과를 활용하기 편해서 더욱 선호했다고. 급기야는 등장인물들이 모조리 파란색인 영화가 나오고 말았다. TED 강연에서도 자신이 그러한 부분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와 동기를 설명하고 있다. 또한 거대 자본을 가진 대기업들이 악역으로 잘 나오며, 결말에는 좋은 꼴을 못 보여준다는 공통점도 있다. 물론 이 대기업과 연관된 상류층에 대한 조롱과 풍자도 자주 등장한다. 에이리언 2의 웨이랜드 유타니,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사이버다인 시스템즈, 아바타 시리즈의 RDA,이 대표적이다. 위의 테크놀로지 비판처럼, 정작 감독 본인은 영화를 찍기 위해 거액의 제작비를 끌어다 쓰는 모습을 보면 이 또한 아이러니.
카메론은 또한 영화사에서 특히나 주체적이고 강한 여성 캐릭터를 많이 만들어냈고, 그 캐릭터들이 호평을 받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에일리언의 엘렌 리플리부터 시작해서, 터미네이터의 사라 코너, 타이타닉의 로즈 등 적극적이고 활동력 강한 여성 캐릭터는 카메론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에 대해서 카메론 감독은 여러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부터 강한 여성이었던 어머니와 할머니를 존경하며 자랐었고, 자신이 커리어를 시작했을 때의 영화계에서는 주로 전형적인 강한 남성 주인공이 넘쳐났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런 현실에 대한 반발심으로 강한 여성 캐릭터를 많이 만들게 되었다고 밝혔다. 다만 오늘날에 와서는 주체적이고 강한 여성 주연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작품들이 많아졌다 보니 굳이 이런 부분에 대해서 고집하지는 않다고 하며, 그보다는 남성과 여성을 구별하지 않고 강한 주체성을 가진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는 것에 대해 더 흥미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카메론 감독의 특징 때문인지 카메론이 직접 감독 작업하려다 제작과 각본으로 물러서고 로버트 로드리게즈에게 메가폰을 넘긴 총몽의 주인공 갈리역시 강인한 여전사로 카메론에 의하여 어떻게 해석될지 기대받고 있다.
카메론의 연애사도 그런 영향을 받았는지 상당히 주체적이고 자신의 분야에서 뛰어난 활동을 하고 있는 여성들과 많은 연애를 했는데, 첫 부인을 제외하고 그 이후의 연인들의 경우 제작자 게일 앤 허드, 여성감독 캐스린 비글로, 배우 린다 해밀턴 등과 결혼 및 이혼을 해왔다. 현재의 부인은 《타이타닉》에 조연으로 얼굴을 비친 배우 수지 에이미스.(로즈의 손녀딸로 잠깐 등장한다)는 99년 저지먼트 데이 이후로 영화배우 생활을 은퇴한 후 환경운동가로 변신하여 미국 내에서 열정적인 NGO 활동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탠리 큐브릭과 더불어서 가장 괴팍하면서 완벽주의적인 성격으로 유명하다.《에일리언 2》를 촬영할 때 초반에 영국 스태프들과 호흡이 잘 맞지 않자 책상을 뒤엎을 정도로 싸웠다는 얘기가 있으며 조명 감독이 실수로 조명을 어둡게 하거나 너무 밝게 해도 "당신은 조명을 맞추는 법을 대체 어디서 배운 거야?"라고 호통을 치고 《타이타닉》 촬영 때도 뭐 하나 맘에 안 들면 육두문자부터 시작해서 스탭들과 배우들을 달달 볶아대었다고 한다. 제 아무리 몸값 높고 유명한 배우라 할 지라도 인정사정 없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영화 어비스 촬영 일화.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메리 엘리자베스 매스트란토니오는 우리는 물고기가 아니라고 카메론에게 욕설을 퍼부었고 주연인 에드 해리스는 꿈 속에서까지 카메론의 호통소리가 들릴 정도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무도 카메론에게 찍소리 하기 어려웠던 게 당시 카메론은 어비스 촬영 때문에 아예 먹고 자는 거 빼고 나머지 시간을 전부 물 속에 들어가 있어서 당시 스태프들은 불평불만을 얘기할 엄두가 안 났다고 여러모로 이 감독의 포악무도함과 완벽주의를 알 수 있는 사례다. 이때의 일화 덕택에 어비스는 영화 역사상 가장 스태프들을 혹독하게 굴린 영화 중 하나로 회자되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그의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카메론 자신이 노력형 천재에 가까운 인물이다 보니 스태프들의 일처리나 결과물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기에 자연 성격이 까칠해지고, 그렇게 가르쳐주고 지시했는데도 저렇게 밖에 못하냐는 식으로 울화통에 가까운 반응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과 그리고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감독이라는 위치에서, 답답함을 누르며 그들을 계속 보며 이끌려다 보니 저렇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카메론처럼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빡세게 굴지 않고도 영화 잘만 찍는 거장 감독들도 여럿 있는 걸로 봐선 그냥 카메론의 본바탕이 저렇다고 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물론 그 대신 다른 감독들은 카메론에 비견되는 최고의 성적을 찍진 못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 불같은 성격 때문에 촬영장의 스태프들은 그를 촬영장의 폭군, 혹은 촬영장의 조지 S. 패튼 장군이라고 불렀다. 실제로 카메론은 패튼 장군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막말을 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스태프를 가차 없이 해고해버렸지만 카메론은 "그래도 나는 패튼 장군처럼 몽둥이로 당신들을 두들겨 패지는 않았다"라고 응수했다.
이러한 카메론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친구들,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포함해서, 카메론 사단이라고 일컬어지는 마이클 빈, 빌 팩스턴, 제넷 골든슈타인, 랜스 핸릭슨은 카메론 감독의 성격 때문에 촬영장에는 늘 긴장감이 감돌았고, 스태프들이 카메론에 대한 불만과 뒷담화를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고 말했다. 빌 팩스턴은 《타이타닉》에서 보물 사냥꾼 브롯 러벳의 성격과 선원들을 다루는 방식을 제임스 카메론의 행동과 대화 방식을 차용해 연기했고, 카메론도 이러한 그의 연기를 보고 자신과 유사한 점이 많다며 시인하기도 하였다.
이런 스타일 때문에 카메론이 여기저기서 원한을 산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터미네이터 2가 당초 계획보다 더 많은 제작비를 먹어치우자 그에게 치여서 앙심을 품고 있었던 영화계 사람들 중엔 터미네이터 2가 흥행에 실패해 카메론이 빈털터리가 되기를 내심 바랐던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NASA의 과학자들과 함께 심해 탐사를 다녀오면서 성격이 크게 변하게 된다. TED 영상에도 나와 있듯이, 카메론은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며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유대감"을 탐사 과정에서 배웠고, 이를 《아바타》의 제작 과정에 도입해서 매우 좋은 결과를 냈다고 밝혔다. 실제로 《아바타》의 촬영은, 이전까지 카메론이 찍은 영화들과는 다르게 굉장히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고 한다. 《에일리언 2》에서 출연했던 시고니 위버도 카메론이 순해졌다고 언급할 정도.
게다가 이런 변화를 겪은 후, 자신처럼 한 성질하기로 유명한 마이클 베이한테도 "성격 죽여도 그렇게 나쁜 게 아니라네" 라고 말해서, 마이클 베이도 카메론에게 배워서 옛날처럼 사납게 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상당히 뛰어난 그림 실력을 가지고 있다. 헐리우드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감독들이 적잖이 있지만, 개중에는 구색만 갖춘 감독들도 많은 반면 제임스 카메론은 실력이 출중한 편.링크. 터미네이터부터 아바타까지 많은 작품에서 직접 컨셉 아트를 그렸다.
TV 시리즈로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슈퍼솔저를 소재로 한 《다크 엔젤》 시리즈를 만들었다. 제시카 알바가 출연하는 등 나름대로 대작이었는데 반응은 중박 수준. 하지만 시청률이 점점 답이 없는 상태로 내려갔기 때문에 시즌 2로 종료되었다.
스파이더맨 트릴로지의 생체 거미줄 아이디어는 이 사람이 낸것이다. 덕분에 웹 슈터 어디 갔냐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카메론은 고작 고등학생이 하루만에 그런 장치를 만드는거 보단 이게 더 현실성 있다고 반박. 사실 거미의 능력을 거의 다 얻었으면서 거미줄만 못 만드는게 말이 안되기도 하고.
《타이타닉》을 촬영할 때 한 자료 조사로 심해 전문가 급의 지식을 갖추게 되었고, 그 지식으로 인해 2010년 발생한 환경 대재앙 딥워터 호라이즌 폭발 사고의 대책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다. 당시 대책회의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브레인스토밍 차원에서 대책을 논의하던 자리였는데, 카메론도 여기에 참석한 것. 카메론은 당시 정부 관계자를 병신(moron)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하였는데, 사태가 진정국면에 들어섰을 때는 '우리가 대책을 건의했는데 정부는 씹었다. 근데 나중에 보니 그 대책을 써먹고 있더라. 우리말을 들었으면 좀 더 빨리 해결되었을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건 카메론 본인의 이야기고, 딥워터 호라이즌 폭발사고에 대한 공식기록에는 카메론의 존재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 두자. 다큐멘터리의 필모그래피에서도 보이듯이, 심해로 가라앉은 나치 독일의 전함 비스마르크의 탐사도 했었고, 비스마르크의 격침에 대한 새로운 사실도 밝혀냈었다. 그 외에도 NASA의 화성 탐사에 자문으로 참가하고 있다.
1인승 잠수함으로 최저 깊이 잠수 신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결국 1인승 잠수함으로 마리아나 해구 밑바닥까지 내려간 사람이 되었다.
《아바타》의 성공 이후 후속작 세 편을 더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하여 제작사인 20세기 폭스는 카메론에게 전권을 위임하였고, 맘대로 찍을 수 있을 때까지 찍어보라고 하였다. 이미 벌어들인 수익이 너무 어마어마하여, 세 작품들 중 한 작품만 건져도 《아바타》 시리즈 전체로는 돈을 벌었으니 이런 허가를 내줄 수밖에….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순차적으로 2, 3, 4편이 개봉될 예정이다. 《총몽》 영화화는 《아바타》 시리즈의 제작이 모두 끝날 때까지 보류한다고. 그러나… 이마저도 1년씩 늦춰져, 2편은 2017년, 3편은 2018년, 4편은 2019년에 개봉한다고 한다. 그런데 또 다시 연기되었다. 이번에는 개봉 날짜마저 제대로 잡혀있지 않은 상황.
그런데 최근 알려진 소식으로는 《아바타 5》까지 각본이 나와 있다고 한다. 예정대로 간다면 5편은 2020년 말에 개봉될 것으로 보인다.
카메론 영화를 많이 봤다면 어렵잖게 공감하고 웃을 수 있는 내용이다. 대강 패러디 요소를 집어보자면, 시간이동 후 두 인남캐가 알몸으로 나오는 장면(《터미네이터》 시리즈), 거대 레이저 캣이 나오는 장면부터 쭉 《에일리언》 시리즈의 패러디가 나오고(국장이 사실은 기계였다거나(《에일리언 2》), 시고니 위버가 나온다거나, 사실 시고니 위버에게 레이저 캣이 기생하고 있었다거나(《에일리언 3》), 인남캐 하나가 뜬금없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더니, 다리불구가 되어서 아바타 기계에 타는 장면은 두말 할 것 없는 《아바타》 패러디. 레이저 캣 둥지를 파괴하고 탈출하는데, 뜬금없이 남아서 현악 4중주를 선보이는 음악가들은 《타이타닉》의 패러디이고, 레이저 뱃은 전설의 그 영화 《피라냐 2》의 패러디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리부트 3부작이 모두 완결된 뒤에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판권이 2019년에 제임스 카메론에게 넘어오게 된다. 다만 아직 카메론이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차기작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 걸로 보아, 카메론의 터미네이터 후속작은 아직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카메론의 아바타 5부작 같은 차기작들을 보면 더더욱 어려워 보인다. 데드라인에 의하면 터미네이터 6은 데드풀을 흥행시킨 팀 밀러를 고려 중이라고 하는데, 제임스 카메론은 제작자로 남고 시리즈는 계속된다는 걸로 추측된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과는 절친이기도 해서, 하비 와인스틴이 델 토로에게 부당한 대우를 했다는 걸 알고 주먹싸움까지 갈뻔했다고 한다.
잭 스나이더 감독의 팬으로, 비주얼에는 로버트 로드리게즈와 잭 스나이더한테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2018년에 외신 인디와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어벤져스 시리즈에 대해 쓴소리를 냈다. 그는 “사람들이 ‘어벤져스’에 관해 곧 피로감을 느끼길 바란다”며 “두 시간 동안 가족에 대한 고민 없이 초능력을 지닌 남성들이 도시를 때려 부수는 내용 외에도 할 이야기는 많다”고 말했다.
여담으로 미국 드라마 앙투라지에 본인 역으로 카메오 출연했다. 아쿠아맨의 감독을 맡는 모습으로...그러다 결국 2018년 아쿠아맨이 개봉하게 되었는데, 제임스 카메론 대신 제임스 완이 감독을 맡게 되었다.
쌩으로 오리지널인 영화를 못만드는 감독이라는 소리도 듣는다. 예를 들어서 터미네이터는 마이클 크라이튼의 1973년작 영화 웨스트월드의 지대한 영향에 있고, 1970년 영화 콜로서스의 영향력도 많이 언급된다. 할란 엘리슨은 스카이넷이 자기 각본의 에피소드 표절했다고 주장해서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고 합의금까지 받아냈다. 에일리언 2의 기본구조는 1954년 괴수영화 THEM!에서 가져왔다. 트루라이즈는 클로드 지디 감독의 1991년작인 프랑스 영화 라 토탈(La Totale!)의 리메이크. 타이타닉은 말 그대로 실화기반이다. 아바타는 해당문서를 보면 표절과 영향관련으로만 한 문단이다. 그나마 말이 적은 것은 어비스인데, 이건 카메론의 대표적인 흥행실패작.
4chan /tv/ 게시판에 팬들이 많으며 Based Jim이라고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