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자원 발굴의 축복으로 흥했다가 고갈되서 망한 국가 '나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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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자원 발굴의 축복으로 흥했다가 고갈되서 망한 국가 '나우루'

오세아니아 미크로네시아에 위치한 나우루 섬에 있는 공화국. 섬 면적 21제곱킬로미터로 서울 용산구 정도 크기인, 매우 작은 나라다.

재미있는 역사를 가진 나라인데 구아노(동물의 똥)로 섬이 이루어졌고 그 똥이 인광석이라는 자원으로 변해서 한 때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가는 부자나라였다. 게다가 이 수치는 1980년대의 3만 달러이다! 당시에는 미국이나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도 1만 달러 대였다. 지금으로 치면 카타르나 룩셈부르크급의 포지션이었다고 보면 된다.



인구는 경상북도 울릉군과 거의 비슷하다.



나우루의 존재는 1798년 유럽인에게 드러났다. 그전까지는 그저 원주민들이 평화롭게 지내는 오세아니아의 여느 섬과 다를 바 없는 곳이었다. 섬에 처음 나타난 유럽인인 존 피언(Johm Fearn)은 섬의 모든 것이 사람 살기에 쾌적하다고 생각해 섬 이름을 기쁜 섬(Pleasant Island)이라고 지었다. 
그 후 30~40년 간 유럽인들이 이 섬을 왕래했고, 이들이 가져온 무기와 술의 전래로 섬의 평화는 파괴되고 10년 동안 씨족 간의 전쟁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1870년대에는 섬에 있던 독일 무역상들이 자신들을 보호할 목적으로 독일 정부에 무기를 요청해 많은 무기들이 원주민들에게 대량으로 거래되었다. 그후 전쟁과 질병으로 40년 간 인구가 1/3로 감소했고, 독일에 점령당한 1888년 당시에는 여자 인구가 남자 인구보다 30%나 많이 있었다고 한다. 나우루는 1914년까지 독일의 식민지배 하에 있었다. 

1899년 영국의 한 회사가 나우루에서 인광석을 발견해 나우루섬은 자원적으로 중요해졌다. 이 때문에 호주는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가장 먼저 배 한 척을 몰고와 독일로부터 나우루를 빼앗는다. 별다른 공격도 없었다고. 이후 나우루 지역은 영국, 호주, 뉴질랜드가 통치하는 국제연맹 위임통치령으로 편입되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기간에는 일본에게 점령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나우루는 호주에 귀속된다. 1951년에 지방 정부 회의가 나우루에 설립되고 섬에 일부 자치행정이 부여되었다. 나우루는 영연방과 합의하에 1968년 독립했다. 1970년에는 호주, 뉴질랜드, 영국이 갖고있던 인광석 채굴권을 나우루에 넘겨주었다.

그리고 나우루의 본격적인 황금기가 시작되는데, 광업 초기에 국영회사는 광산 지대에 땅을 소유한 나우루인들에게 선적된 인산 1톤에 대해 1/2 페니씩을 지불했으며, 연간 선적양은 백만 2천 톤에서 2백만 톤에 이르렀다. 20년 동안의 인광석을 채굴하는 신탁회사들의 로열티만 하더라도 2억 3천만 달러로 추정된다.




당연히 국민들은 부자가 되었고 워낙 인구가 적었기 때문에(13,000명) 부의 분배도 공평하게 나누어져 불만을 가지는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오일머니 저리가라 급으로 돈지랄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전 국민이 모두 잘 살았다. 예를 들자면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피지나 하와이, 싱가포르로 매일 같이 쇼핑을 하러 가고, 도로가 나라에 딱 한 개, 그것도 길이 18㎞, 제한속도 40㎞/h 짜리만 있는 데도 너도나도 람보르기니, 포르쉐 같은 고가의 자동차를 타고 다녔고, 그것도 두 대는 기본. 그 좁은 섬에 여객기만 9대, 주유소는 29개나 있고, 걸어다니기 귀찮아 얼마 안 되는 거리도 차를 타고 다녔으며, 마트에서 쇼핑하기도 귀찮아서 차를 몰고 마트 앞에 가서 전화하면 종업원이 지정한 물건을 들고 나왔다.

물론 집에는 각종 가전제품, 심지어 그 당시에는 부자들만 가질 수 있던 컴퓨터나 게임기도 있을 정도다. 채굴산업엔 현지인들은 없고 외국자본가, 외국인 노동자만 있었는 데도 이 정도였다. 국민들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이들이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 필요한 노동력은 전부 외국인 노동자로 때웠다. 심지어 공무원까지 외국인이었다. 세금도 없고 주택도 학비도 유학 경비도 병원도 모두 국가에서 대주었기 때문에 그냥 공짜였다.

어찌됐든 이들은 이렇게 생각없이 돈을 탕진했고,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갔다.


사진에 나오는 시설은 전부 방치된 채 버려진 시설들이다.

장래에 대한 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반면교사.

1990년대에 들어서부터 광산이 감소하면서 인광석이 바닥을 드러낼 조짐을 보였다. 이때부터 몰락 전설이 시작된다. 이를 대비해 정부는 바닷가에 어항을 만들어 국민들을 일하게 만들어 보려고 했으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한참동안 제 힘으론 손 하나 까딱 않고 놀기만 하다보니 고기잡이 같은 생활문화는 없어지고, 농사지을 땅도 인광석 채굴로 없어졌을 뿐더러 농사짓는 법도, 낚시하는 법도, 심지어는 빨래나 요리같은 인간적인 삶을 위한 필수 능력도 완전히 잊어버려서 로스트 테크놀러지가 되어 옆나라에 가서 배워야 될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당장 경작지도 닥치는 대로 채굴했기 때문에 국토의 80%가 남은 바위덩어리만 있는 황무지. 현재도 식료품은 수입된 가공식품만을 구할 수가 있으며 생산되는 작물 자체가 없다. 엄밀하게는 일부 과일이나 채소가 나우루에 재배되고 있고, 돼지를 키우는 가정도 있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텃밭에서 채소 기르는 수준이어서 산업이라 말하기 민망할 수준이다. 사실상 농업이 존재하지 않는다해도 무방한 상태이다.

사태를 인식한 나우루 정부는 채굴량을 줄이고, 채굴해간 나라에 대금을 요구하고, 해외 유명 휴양지에 빌딩을 지어 임대업을 하는 등 힘을 썼으나 국내 소비를 감당할 수가 없고, 국민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못 느껴 일할 의지가 없었다.

그래도 자산운용이라도 제대로 했다면 최빈국 수준까지는 안갔겠지만 부정부패가 심각하다보니 국가 자산 운용도 개판이라서 엄청난 재산을 까먹었다. 정부 예산을 횡령하는 일이 자주 있었고 투자한 사업도 사업성 검토가 부실해 줄줄이 말아 먹었다. 게다가 부동산 구입도 바가지 쓰면서 적정가격의 몇배로 구입하는 병크가 번번했다. 국제 거래 및 투자에 대한 전문가가 없어 국가예산의 회계 및 감리할 담당자가 없었다. 심지어는 국가 예산 수천만 달러가 증발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냥 넘어갔다. 이래저래 상당히 막장이었는데 몇 가지 사례를 들자면 정부관리들이 국고의 돈을 개인자금과 동일시한 건 예삿일이었고,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 있는 나우루 하우스라는 개인빌딩 꼭대기층에 대통령집무실이 있었으며, 나우루의 경제부 장관은 경제에 대해 어떤 교육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1993년도에는 Leonardo the Musical: A Portrait of Love라는 뮤지컬에 400만 호주달러를 투자하고, 초연이 공연되자 정부의 모든 각료들이 런던으로 당일치기로 와 공연을 관람하고 본국으로 돌아간 일도 있었다. 그리고 투자한 뮤지컬은 망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래도 부동산에 투자한게 어디가지는 않았는지 인광석이 거의 바닥날 때 쯤에는 투자해두었던 부동산을 담보로 세계의 은행에서 돈을 융통하였다. 또한 그 동안 벌여들인 수익으로 외국인 마피아들을 상대로 국적을 팔고, 스위스를 흉내내서 세계의 검은 돈을 보관하는 은행업을 시작하였고 이 전략이 제대로 먹혀들면서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조세 피난처 노릇을 하면서 먹고 살았고 인구가 적었기 때문에 자원이 고갈되었어도 몇년간은 전성기때 수준은 아니더라도 아직도 오세아니아에서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부유한 나라에 속하기는 했다.

그러나 9.11 테러가 일어나자 상황은 급변하여 나우루는 검은 돈으로 벌어들이는 수입 때문에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어 나우루 은행에서 예금이 대량인출되고 국제적으로 제재조치를 먹는 바람에 나우루의 경제는 엄청난 타격을 입으며 최빈국으로 굴러떨어지게 된다. 사실 나우루 국민들은 지금도 통장 장부상 가진 돈으로는 부자라고 한다. 이걸 오세아니아 기준으로 말하자면 나우루 국민들의 통장 장부상 1인당 GDP가 피지나 바누아투, 솔로몬 제도, 파푸아뉴기니, 통가, 사모아보다 월등히 높은 정도다. 하지만 나우루 은행은 지금 한 달에 딱 한번, 임금 지급 때만 업무를 본다. 예금된 돈은 당연히 마음대로 찾을 수도 없고, 허공에 떠 버린 상태라서 거지신세인 것. 그러니까 기업의 흑자도산이 가계경제 단위로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은행 하나 망했다고 이렇게 심각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나우루 은행이 유일한 국립은행이었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대한민국의 한국은행이 무너졌다는 것. 미국이 나우루 은행을 파산시켰으니... 

결국 금고가 바닥난 나우루 공화국은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시리아 등지에서 오는 보트피플을 수용해주는 조건으로 난민을 받아주지 않으려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지원을 받아 겨우 연명했다. 덕분에 나우루 원주민보다 난민 숫자가 더 많아졌는데, 난민을 받을 여유도, 그럴 형편도 아니면서 받은 탓에 제대로 관리도 못했다. 당연히 난민들이 무슨 돈이 있어서 나우루에 온 건 아니고 일단 기초적인 생활은 해야되니까 당연히 나우루 정부에게 일자리를 요구했는데 돈이 바닥난 나우루 정부에서 나몰라라하니 섬 분위기는 험악해졌고 나우루 정부는 기자와 인권운동가들의 입국을 막아버린다. 이윽고 2003년 12월 경 난민들에 의해 시위가 벌어져 관광비자 발급이 갑자기 중지되고, 항공, 통신이 완전히 끊기는 국가 비상사태가 벌어졌다. 2004년 1월에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파견된 구조팀이 왔을 때는 대통령 청사가 불타고 있는등 개막장 상태였다고. 그 기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인데, 급격한 사회구성원의 변화가 망해가는 경제상황과 합쳐져서 대규모 사태를 불러왔다는 것이 주 원인으로 파악된다. 결국엔 나우루도 단 두 명의 난민만 입국이 허용될 정도로 난민의 입국을 기피하게 되었다고.







2013년 새로 선출된 대통령인 바론 와카는 파오후의 기운이 느껴진다. 이러한 특징은 사모아 특유의 게을러 터진 정서에 기반한 체형이지만...

2013년에는 호주로부터 보상금을 받고 설치한 난민수용센터에서 폭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호주로부터 받은 보상금은 7년 만에 은행이 다시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고 2015년에 벤디고 앤드 애들레이드 은행의 나우루 지사 개설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개설 이후 나우루가 다시 조세피난처화 될 수 있으니 폐쇄해야 한다는 여론이 호주 내에서 있었지만, 2017년 6월에 개설 2주년 기념식을 갖는 등 현재까지 그럭저럭 순항하고 있다.

사실 2010년 이후로는 상태가 그나마 나아진 편으로, 한때 2,500달러까지 떨어진 1인당 GDP도 2017년 기준으로는 8,570달러까지 회복한 상태이며, 90%라는 실업률도 많이 떨어져서 2011년 기준으로는 23%로 개선된 상태이다.

그러나 여전히 사정은 열악해 또한 들리는 바에 의하면 나우루 전국에 전기는 하루에 4시간도 들어오지 않으며 이전에 굴러다니던 자동차들은 죄다 기름이 없어서 내동댕이쳐져 있고, 식수조차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사실 태평양 군도의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인광석만 없다면 나우루는 그저 관광업과 어업을 하는 그 동네 관점에서 그저 그런 국가였을 것이다. 그러나 인광석에 너무 의존한데다 이후의 대비책을 강구하지 않은 나머지, 다른 태평양 군도의 국가들과는 달리 관광업이나 어업 등의 기반산업이 쇠퇴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이런 파국을 맞게 된 것이다.



나우루의 현재 경제는 가장 큰 수입원이 해외 원조니까 뭐 경제랄 것도 없다. 그 밖에 자국 영해 근처에서 참치를 잡을 수 있게 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고 있다. 참치를 잡아다가 팔면 될 것이라고 쉽게 말하는데 이것도 하도 많이 잡아서 서서히 수가 줄어든다고 하여 참치 어획 제한까지 나오는 판국이다. 그래도 제한적이 될 지 몰라도 이거라도 일하는 게 없는 걸 보면 여전히 노동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배를 타고 나가서 참치를 잡아온 후 자신들이 먹기도 하고 보관해두고 이웃 주민들에게 조금씩 떼어 파는 정도의 조업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수준을 넘어 산업으로써의 어업, 즉 '참치를 잡아다가 팔면 되지 않느냐'고 이야기하는 것은 참치 어업의 특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주장이라고 보아야 한다. 참치 어업은 어획권의 거래가 이뤄질 정도로 대표적인 상업적 어업의 일종으로 꼽히기는 하지만, 나우루에는 이런 상업적 참치 조업을 가능하게 할 정도의 인프라 기반이 없다. 기본적으로 국제적인 대규모 참치 어획 및 거래에서는 신선한 참치의 공급이 최우선인데, 이를 위해서는 참치를 잡은 즉시 처치하여 냉동, 또는 냉장하여 신선도를 잃기 전에 최대한 빨리 목적지로 수송하기 위한 자본-기술집약적 시스템이 필요한 것. 이런 기반 없이는 외국에 내다 팔만한 산업적 참치 어획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쨌든 결론은 자체적으로 생산해 내는 건 아직 조금씩 나오는 약간의 인광석 말고는 거의 없는 셈.


<방치해버린 인광석 폐광>





100여년간 인광석 채굴을 해왔기 때문에 고도가 낮아져 투발루 섬과 마찬가지로 지구온난화로 가라앉을 위험에 처했다고 한다. 현재 상황이 극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아마 나우루 주민 모두 호주가 지정해준 곳으로 단체 이주하고 나우루라는 나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채 막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망하는 건 시간 문제인 셈이다.